‘아이’, 그는 누구인가
내 손님들, 다들 안녕하신가요?
뉴스에 어두운 소식들이 훨씬 더 많은 날들.
우리에게 좋은, 즐거운, 기쁜 일들이 많이 생기고
모두 힘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많지 않지만 늘 손님들이 여기를 찾아주시는데
자주 글을 못 올려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글을 올리려면 늘 망설여지지만,
그냥 하나 올려봅니다.
늘 몸 건강하고, 또 마음은 자주 즐거우면 좋겠습니다.
‘아이’, 그는 누구인가
사람다운 대우를 받고 싶다!
I. ‘아이’, 그는 누구인가
“아이”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아이:
1. 나이가 어린 사람.
2. (낮추는 말로) 자기의 자식.
3.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이런 뜻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 뜻 하나가 더 나와 있다.
4. 어른이 아닌 제삼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낮잡아 이르는 말.
이에 대한 용례는 다음과 같다.
¶ 요즘 젊은 아이들은 왜 그리도 버릇이 없는지 모르겠어요./조수 아이가 무심한 얼굴로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한수산, 유민≫
여기서 말하는, “조수 아이”는 몇 살이었을까? 적어도 열 살 보다는 많았을 것이다.
‘아이’가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 ‘어른’이다. ‘애, 어른 할 것 없이’라는 표현에는 모든 사람이 포함되니 말이다.
사전을 인용하지 않고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를 이성적 판단 능력과 이에 따라는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의 차이를 가지고 구분한다. 아이는 여러 면에서 판단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이 보호를 해주며, 또 아이가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책임에서 면제를 받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렇게 쉬운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고 있냐고?
그런데 모든 사람을 아이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 가르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성인의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완전히 책임을 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책임에서 면제되고 ‘보호’ 받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책임을 질 능력이 생겨나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이다.
삶은 수많은 실수를 거듭하며 이전보다 조금 더, 이전보다 조금 더 어른에 가깝게 되어가는 과정이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는 용어로도 여러 과정들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한 번 더 인용해 보자.
어린이:
4, 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어린아이.
아동 (兒童):
1. 나이가 적은 아이. 2.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이의 아이.
아동기: 유년기와 청년기의 중간에 해당되는 6~13세의 시기.
소년(少年):
1.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사내아이.
2. 젊은 나이. 또는 그런 나이의 사람.
3. 『법률』 소년법에서, 19세 미만인 사람을 이르는 말.
청소년(靑少年)
1. 청년과 소년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법률』 청소년 기본법에서,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이르는 말.
3. 『법률』 청소년 보호법에서, 19세 미만인 사람을 이르는 말. 다만,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제외한다.
성인(成人):
어른이 된 사람.
어린이, 아동, 청소년은 각각 그 단계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교육이란 바로 어른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이 처한 단계에 적합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가 아이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언어 사용을 가지고 살펴보자.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심지어 성인의 날을 넘긴 대학생도 ‘아이’라고 부른다. 나는 지금 아이냐 청소년이냐를 가지고 말꼬리를 잡고 있는 것인가? 언어란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II. “애가 뭘 알아!”
“애가 뭘 알아!”, “아직 앤데요!”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 편으로는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 관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무시하는 뜻인 경우도 있다. 즉, 아이란 “어른이 아닌 제삼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사, 심지어 대학교 교수도 사석에서 학생들을 “애들”이라고 지칭한다. 거기에 ‘낮잡아 이르는’ 뜻은 조금도 없는 것일까?
이렇게 어른들에게 애는 그냥 아무 것도 모르는 ‘애’일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요즘 애들은 애들이 아니에요!” “환경이 바뀌어서 요즘 애들은 옛날 애들이 아니고 어른보다 더 무섭다니까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III “나는 애가 아니에요!”
이 말은 “나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요!”, “나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니 이에 걸맞는 대우를 해 주세요!”라는 외침은 아닐까?
‘아이들’, ‘청소녀,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른들이 왜 어떤 때는 자신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애’라고 무시하고, 어떤 때는 “넌 더 이상 애가 아니야!”라고 하면서 비난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린이, 아동, 청소녀/청소년은 자신에게 걸맞는 대우를 받고 존중받고 싶어 한다.
IV “우리 누나는 청소녀래요!”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웃 빈이가 중학생이 되고 며칠 뒤였다. “빈이가 이제 중학생이 되었구나! 축하한다!” 빈이의 동생인 진이가 아주 신이 나서 그리고 부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줌마, 누나 선생님이요, ‘청소녀’라고 그랬대요!” 당시 어린 진이가 ‘청소녀’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으랴만 - 내 짧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 진이는 그 말이 누나에게 무언가 ‘자랑스러운’ 말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선생님이 정말 교육적인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객관적으로 표현한다는 ‘뉴스’의 앵커, 기자들이 중학생․고등학생을 지칭할 때조차도 ‘아이’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게다가 ‘청소녀’라는 표현은 정말로 듣기 쉽지 않다.
그 선생님은 “여러분들은 이제 청소녀가 되었어요!”라는 말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으셨을까? ‘자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고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단다!’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선생님이 자신의 학생들을 ‘청소녀’로 대우하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V. 교육이란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교육은 아이가 청소녀/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는 과정에서 좀더 성숙하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우리 문화는 ‘아이’에 대하여 관용적인 문화이고, 여기에는 일정 부분 장점이 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니 잘못을 하더라도 많이 질책하지 않고 포용해주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용’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교육의 과정에 대한 무관심도 있을 수 있다.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을 하고, 아이를 ‘보호’와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하지 말고 ‘대우’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그것을 더 원하고 있지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