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교육사회학 강의와 관련하여 “성찰적 근대화”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글은 박형준의 “인간적인 근대의 성찰. 울리히 벡, 앤서니 기든스, 스콧 래쉬”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막연하게 신뢰하던 현대 사회의 안전 체계가 계산 불가능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문명의 이름으로 도처에 깔려 있는 생명의 위협에 대해 사람들은 전율하였다.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는 바로 그 시점에서 ‘현대 문명이 도달한 지점이 과연 어디인지’를 예리하게 파헤쳐 “제도 과학에 유성의 충돌과 같은 충격을 안겨준” 명저로 각광을 받았다.
이 책에서 벡은 “앞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삶에 대한 위협”인 ‘위험’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성’ 안에 내재한 자동적 결과임을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 문명은 자연과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 ‘제조된 불확실성과 위협’을 점점 증가시켜 왔다. 교통 사고나 비행기 사고의 위험부터 테러와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은 24시간 위험을 옆에 끼고 산다. 문제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해 우리의 지식이 지극히 불완전하고, 위험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도처에 깔려 있는데 위험의 내용과 범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벡이 ‘위험의 덫’이라고 부른 위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회적 행동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어 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을 전면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시스템들을 비록 불완전하고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치적⋅사회적 결정들을 통하여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후자의 과정, 즉 근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위험한 결과들에 대한 새로운 대응 체계를 사려 깊게 만들어가는 ‘이미 진행된 미래’를 벡은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로 명명하였다.] (176-177쪽)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벡의 지칠 줄 모르는 지적 탐험은 영국의 대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와 스콧 래쉬의 작업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1990년대에 와서 이들은 서로의 이론이 매우 근접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찰적 근대화>라는 공저는 이렇게 해서 출간되었다. 우선 이들은 비록 쓰임새는 약간 다르지만 성찰성이란 개념을 시대의 비밀을 풀어갈 새로운 화두로 삼고 있다는 데서 공통의 문제 설정(problematic)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성찰성이란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다. 현대의 모든 제도들과 시스템 속에 자기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기제인 성찰성이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더욱 개인화하고 있는 삶의 조건 속에서 자기 삶에 대한 성찰적 기획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근대화할수록 사회 내에 자신의 존재 조건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 또한 많이 형성되며, 그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또한 커진다. 그리하여 성찰적 근대화란 이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근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근대를 봄으로써” 근대를 더욱 ‘인간답고 아름다운 근대’로 만들자는 기획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기획에 있어 벡이 구조의 자기 창조적인 변화에 좀더 주목하고 있다면, 기든스는 지식과 전문가 체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며, 래쉬는 삶의 심미적 차원이 자아내는 새로운 지평에 강세를 주고 있다. 이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과 “나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은 분리되지 않는다.](178-179쪽)
[벡 등에게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정치의 혁신은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자아 실현에서부터 구조 개혁에 이르기까지 ‘투명한 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적 결정을 기다리는 영역은 급속히 늘어난다. 가족이나 성, 기술, 직업, 라이프 스타일 등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영역까지도 이제는 정치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 이데올로기, 종교, 문화를 포함해 전통의 이름으로 자신을 보존하던 모든 것들이 탈(脫)전통화되고 재(再)전통화(새로운 관행과 제도로 굳어지는 것)되는 과정에서 정치는 일상화되고 있다.
이것을 기든스는 ‘생활 정치’라는 개념으로, 벡은 ‘하부 정치’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양자 모두 성찰적 근대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다양한 영역에서 그 영역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기 위해 대화하고 협상하는 데 터잡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벡에게 이것은 여러 행위 주체들이 참여하여 협상하는 원탁 모델의 시민민주주의로, 기든스에게는 고도로 발달한 전문가 체계의 지원을 배경으로 한 대화민주주의로 상정된다. 래쉬에게는 동일한 문제 의식이 세계 내 존재들이 위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가꾸고 서로를 어떻게 보살피는가 하는 심미적⋅윤리적 차원의 문제로 치환된다. 다시 말해 세계 내에 홀로 던져진 존재들이 삶을 둘러싼 환경의 복잡성과 위험을 넘어서기 위해 삶에 대한 자기 해석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정서적⋅윤리적으로 연대하는 관계를 중시한다.](180-181쪽)
(박형준: “인간적인 근대의 성찰. 울리히 벡⋅앤서니 기든스⋅스콧 래쉬”, 김상환 외: 세계 지식인 지도. 산처럼, 2002, 177-181쪽)
참고: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약력
- 1944년 독일 슈톨프 출생
- 1972 뮌헨 대학 사회학 박사
- 1978 뮌스터 대학 사회학 정교수
- 1986 밤베르크 대학 정교수
- 현재 뮌헨 대학과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
앤서니 기든스(Anthont Giddens)의 약력
- 1938년 영국 런던 출생
- 1961년 헐 대학 졸업
- 1967년 케임브리지 대학 사회학 박사
- 1972년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 현재 런던정치경제대학 학장,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의 이론적 컨설턴트
스콧 래쉬(Scott Lash)의 약력
- 1945년 미국 시카고 출생
- 1967년 미시간 대학 졸업
- 1973년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사회학 박사
- 1977-1998년 랭카스터 대학 교수
- 현재 런던 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 교수 및 문화연구소 소장
이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기 권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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