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바이셰델 : 철학의 뒤안길. 이기상, 이말숙옮김, 서광사, 1990.
(2004년에 출간된 안인희 역, <철학의 에스프레소>도 내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인터넷 서점에 나온 책 소개를 보니 같은 책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탈레스,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에서부터 러셀,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의 철학자 32명을 소개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하여 이 책을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일찍이 독일 유학 시절에 바이셰델의 <철학의 뒤안길>을 대하여 “재미있게” 철학의 문제들 또는 철학의 역사에 입문할 수가 있었다.](7쪽) 옮긴이의 말처럼, [그토록 바이셰델은 흥미진진하게 철학자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그들의 중요 사상을 잘 소개, 전달하고 있다.](8쪽)
많은 사상가나 철학자들, 또는 과학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다룬 책들이 많이 팔리는 모양입니다. 몇 년 전, 신문에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는 난에 그러한 책이 나왔습니다. 다른 책들을 사러 나간 차에 신문만 믿고 그 책을 들여다보지 않고 샀습니다. 나의 불찰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순전히’ 에피소드만 들어있었습니다. 철학적인 맥락은 하나도 없이. 무슨 농담 책도 아니고 ...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은 32명의 철학자에 대하여 그들의 철학을 일상생활과 함께 재미있게, 맥락 속에서 소개하였습니다. 쉬운가요? 어려운가요? 라는 질문에는 진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책이든 소개하고 나면 “그 책 어렵던데요!” 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습니다. 이 책도 중가중간 재미있지만 아무 문제없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 대화가 풍부해 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 장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도 없이 심심할 때 한 사람 골라서 읽으면 되니 부담도 없구요.
이 책의 첫 장인 탈레스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플라톤이 탈레스에 대해 보고하는 다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철학적이다. “탈레스가 별을 관찰하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걷다가 그만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그러자 익살스럽고 똑똑한 트라키아의 한 하녀가 이렇게 그를 비웃었다. 자기 발 밑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면서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다니!” 웅덩이에 빠진 철학자, 그것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몰골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일화를 진지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그와 똑같은 조소는 철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실 철학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무엇을 하는지, 심한 경우에는 자기가 인간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존재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 철학자가 법정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 자기의 발 밑이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때, 그는 트라키아의 하녀뿐 아니라 다른 여러 민족에게도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는 경험 부족으로 웅덩이뿐 아니라 헤어날 길 없는 온갖 어려움에 빠진다. 그의 서툰 행동은 놀랄 만하고 우둔한 인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결정적인 말은 이제부터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와 달리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겪어야 하는지를 탐구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상황이 역전된다. 플라톤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러하다. 즉 정의의 본질이라든가 다른 본질적인 물음이 문제될 때,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말지만 바로 이때 철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 밀레토스의 탈레스를 왜 최초의 철학자라고 일컫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탈레스에게 문제가 된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이다.](19쪽 이하)
서양의 1호 철학자, 탈레스. 교육학개론 그리고 교육철학에서 “철학”(philosophy)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나왔던 내용이지요. 철학이란 “본질에 대한 물음”이라구요.
여기서 사족을 붙여보겠습니다.
그러면 철학자는 생활에 무능한 사람인가? 만약 대답이 무조건 “예스!”라고 한다면, 철학은 정말로 우스운 것이 되고 말지 모릅니다. “어디다 써 먹는 건데?” 유용(有用)을 그저 밥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삶에 진짜로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이 진짜로 문제일 듯합니다.
하이데거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그가 강연을 할 때면 강의실은 언제나 초만원이었다. 그의 세미나에서 학생들은 언제나 사실에 머물려는, 어떠한 문제도 회피하지 않으며 모든 성급한 대답들을 물리치는 사유의 긴장을 배운다.](410쪽)
아까 쉬운 책인가 어려운 책인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었지요.
어떤 책이 막히는 데 없이 술술 읽힌다면, 그 책은 읽는 이에게 아주 쉬운 책이라는 거겠지요. 즉, 아는 이야기가 주로 나와서 새로 얻어가질 것은 없었다는 뜻이지요. 그런 책을 뭐하러 시간 내서 읽겠습니까?
중간중간 걸리는 책을 읽어야, 그 중간중간 걸리는 곳에서 생각도 하고 그러는 거지요. 그것이 아마도 ‘사유의 긴장’ 아닐까요?
내가 이 책을 다 이해했냐구요? 아니요!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하냐구요? 그냥 눈으로 읽으면서 넘어가세요. 그러다가 아주 가끔이라도 한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는 거지요.
예전에 교육철학에 관계되는 과목을 강의할 때마다 꼭 이 책을 추천했었습니다. 어떤 선생님 한 분은-수학 선생님이셨습니다- “그책 껴안고 다녀요! 너무 좋아서요”라고 하셨구요. 그 책을 내 추천으로 샀다는 다른 이는 “재밌다더니 속았어요!”라고 하며 나를 볼 때마다 눈을 흘기기도 했습니다.
나를 믿으면 안 됩니다!^^ 누굴 믿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무엇이든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믿지 말고 도서관에서, 책방에서, 책을 손에 들고 몇 장이라도 읽어보고 선택하세요. 여러분의 시간입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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