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야기들

참을 수 없는 ...

biumbium 2006. 6. 6. 13:54
 

어제 올린 글, <지루함의 철학>에 밀란 쿤데라가 나왔지요.

그래서 밀란 쿤데라와 엮인 추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굉장히 오래 전의 일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이 많이 읽히고, 그러다가 영화가 나왔을 때의 일이지요. 아는 이가 - 철학도였습니다 - 내게 그 소설책을 선물했어요. 내 생일이거나 아니면 크리스마스 .. 뭐 그런 때였겠지요. 그 책 속표지에 무슨 글을 써서 주었던 것 같은데, 지금 그 책이 내 눈 앞에 없어서 확인할 수가 없네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독일어로는 <Die unerträgliche Leichtigkeit des Seins> 일 거에요. 내가 독일어로 공부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소설까지 읽어야 하다니 어쩌구 하면서 아무튼 읽었습니다. 선물한 사람이 읽었느냐고 물어보면 안 읽었다고 할 수 없어서 읽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재미있었어요. 그 당시의 나에게 충격적인 문장들이 나왔지만, 내용도 소설구성도 새로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다가 기숙사 우리 층에 살고 있던 친구들이 나를 빼놓고 즉석회의를 하더니 그 영화를 다 같이 보러 가기로 했다고 내게 통보했습니다. 나는 TV야 방에서 켜놓으면 되는 것이니까 잘 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게으른 내 몸을 움직여 영화관에를 갈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함께 갔습니다. 알아는 들으려나 .. 하면서도 순전히 협동정신에서 말이에요.


그런데 이 영화가 당시 - 오래 전이니까요 -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잘릴 것이 틀림없는 이른바 “야한”,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튼 내겐 곳곳에서 충격적인 영화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몇 장면들 때문에 내가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날 저녁 우리 모두는 부엌 겸 식당에 앉아 - 독일의 기숙사에는 층마다 부엌 겸 식당이 있습니다 - 영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그 잘하는” 독일어로 한 마디 해야지요.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친구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영화의 제목, 그 뿐이었는데 이들이 왜 웃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Die unerträgliche Leichtigkeit des Sinnes>를 입을 맞추어 복창하면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니까요. “그래 너한테는 그랬을 거다!”


나는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니들 왜 그래?  뭐가 잘 못됐어?” 그 마지막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멈칫했습니다. 내가 “그 잘하는” 독일어로 제목을 틀리게 말한 것을 발견했으니까요.


영화 제목의 Sein(존재)을 Sinn(감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감각의 가벼움>으로! 나 스스로 놀랐습니다.내 머릿속에는 별로 많은 독일어 단어들이 들어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Sein이 Sinn으로 바뀌어서 내 입 밖으로 나왔을까? 좀 창피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한 동안 우리 층의 친구들은 나를 보기만 하면 <참을 수 없는 감각의 가벼움>이라고 하면서 나를 놀리는 것을 취미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나중에는 나도 포기하고 함께 웃었구요.


“아니었어?” “그래, 그렇다니까!” 하구 말이지요.


좋은 시간 되세요.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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