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러셀의 행복론. 황문수 옮김, 2001.
차례
제1부 불행의 원인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바이런적 불행
경쟁
권태와 지극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
제2부 행복의 원인
아직도 행복은 가능한가
열의
사랑
가족
일
일반적 관심사
노력과 체념
행복한 사람
옮긴이의 말
I.
써야 할 글이 있어서 이책저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아집니다. 읽던 책을 내던지고 싶어집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 주제를 좀 떠나고 싶은 충동이랄까요. 이 주제가 아닌 책을 읽고 싶다, 뭐라도 좋다, 이 주제만 아니라면 다 재미있을 것 같다, 뭐 이런.
내 손님들도 그런 경험 자주 할 것 같은데요. 과제물로 나온 보고서 작성하려고 그 주제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빌려다 놓고 며칠 동안 거기 매달려 있다보면, 과제가 아닌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지는 거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써야 하는 글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책을 골라 펼쳐봅니다.
교육학자가 쓴 책, 철학자가 쓴 책, 심리학자가 쓴 책, 이론적 체계적으로 쓰인 책,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형식으로 쓰인 책 ...
그런데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책들인데도, 그 책들을 읽다보면, 인간의 행복, 고독, 인간관계, 열정, 의미 ... 이러한 내용들을 예외없이 만나게 됩니다.
또 이거야, 여기도 이 얘기야, 이거 빼면 할 얘기 없나?
그렇게 뻔한 얘기인 것 같은데, 뻔하지 않으니까, 그것들에 관한 책들이 끊임없이 쓰이고 끊임없이 읽히겠지요?
그리구요, 이건 내 문젠데요, 내가 써야 하는 글도 그 주제가 들어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에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내 주제를 떠나서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냥 희망사항으로 남았습니다.
II.
러셀의 행복론에 나온 글을 소개합니다.
차례는 위에 있구요. 여기서는 그 중간에 나온 “열의”라는 부분이에요.
그 중에 식사-먹는 것-에 대한 태도를 삶에 대한 태도에 비유한 곳을 인용합니다. 재미로 읽어보세요.
[열의]
[이 장에서는 행복한 사람의 가장 보편적이고 분명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열의(熱意)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아마도 열의라는 말의 뜻을 아는 최상의 방법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있을 때 취하는 여러 가지 행동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이리라. 식사는 단지 싫증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사가 아무리 성찬이라도 그들은 식사는 재미없는 일이라고 느낀다. 그들은 전에 성찬을 먹어보았거나, 어쩌면 거의 매일 성찬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굶주림이 맹렬한 정열이 될 정도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어떠한 일인가를 전혀 알지 못하며, 식사는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와 풍습에 의해 지시된 인습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식사는 지루하지만, 그렇다고 법석을 떨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로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간의 영양을 꼭 섭취해야 한다고 명령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식사를 하는 환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희망에 차서 식사를 시작하지만, 결국은 제 맛을 제대로 낸 요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미식가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주 탐욕스럽게 음식에 대들어서 과식을 하고는 식곤증이 생겨 코를 골고 자는 대식가도 있다. 끝으로 건전한 식욕을 가지고 식사를 시작하며 음식을 즐기고 적당히 먹고 나면 식사를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
삶이라는 성찬 앞에 앉은 사람들은 삶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좋은 일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행복한 사람은 건강한 식욕을 갖고 음식을 즐기며 적당히 먹는 사람과 같다. 굶주림과 음식의 관계는 열의와 인생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식사에 싫증을 내는 사람은 바이런적 불행의 희생자와 대비된다. 의무감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은 금욕주의자에, 대식가는 난봉꾼에 비교된다. 미식가는 인생의 쾌락의 반을 비미학적인 것이라고 비난하는 괴팍한 사람과 견줄 수 있다.
이상하게도 대식가는 예외겠지만, 이러한 타입은 모두 건강한 식욕을 가진 사람을 경멸하고 자기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즐기거나 또는 인생이 여러 가지 흥미 있는 구경거리와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생을 즐기는 것을 그들은 천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최대의 환멸감을 가지고 자신들이 단순한 사람이라고 경멸하고 있는 사람들을 동정한다.](러셀의 행복론, 153-154쪽)
III.
이렇게 삶에 대한 태도 운운 하는 거 말구요, 안 먹고 사는 법 없잖아요.
그래서 점심 즈음에 강의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서서, 뭐 먹으러 갈까, 어디로 갈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사구요.
꼭 어떤 것을 먹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번 어휴, 또 뭘 먹나, 에이, 오늘 점심은 건너 뛰자 ... 각양각색이지요. 나는 좀 우유부단한 편이라서 어쩌다 꼭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내가 아는 한 작곡가 왈, “작곡가들은 음식을 다 잘 한 답니다.” 그 사람 주장으로는, 작곡가들은 창조적이라서 음식을 하면서도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요리를 잘 한다나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IV.
이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어요.
[모든 사물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인생은 너무도 짧으나, 매일매일의 생활을 채우는 데 충분할 만큼 많은 사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러셀의 행복론, 155쪽)
이 책을 읽은 내 독후감은요, 어렵게 쓰지 않았으면서 생각할 거 많은 책이었다는 것입니다. 독후감이 너무 짧은가요?
끼니 거르지 말고,
재밌는 시간 만드시기 바랍니다.
김명신
'책을 읽으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 대니얼 레빈슨 외 : 남자가 겪는 인생의 4계절 (0) | 2006.11.07 |
---|---|
17.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 (0) | 2006.10.07 |
14/1 아랫글 부록^^ (0) | 2006.07.20 |
14. 어빙 스톤: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 (0) | 2006.07.20 |
13. 사빈 멜쉬오르 보네: 거울의 역사 (0) | 2006.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