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 스톤: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 3권, 성로 옮김, 까치, 1997.
I
먼저 미켈란젤로의 연보를 잠깐만 볼까요.
하인리히 코흐의 <미켈란젤로>(안규칠 옮김, 한길사, 2000)의 뒤에 나온 미켈란젤로의 연보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1475 3월 6일, 카프레세에서 미켈란젤로가 태어나다. 그는 로도비코 디 리오나르디 디 부오나로티 시모니(1444년 6월 11일 생)와 프란체스카 디 네리 디 미니아토 델세러(1456년 생)의 둘째 아들이다. 부모의 결혼일은 1472년 1원 16일. 형 리오나르도는 1473년 11월 16일에 출생했다.
3월 8일, 카프레세의 산조반니 성당에서 세례를 받다.
미켈란젤로는 세티냐노에서 성장한다. 그의 유모는 석공의 아내였다. 뒤에 그는 부친의 작은 농장에서 살았고, 이어서 피렌체의 데벤타코르디가에 있는 셋집에서 생활했다. 이 집은 염색공인 필리포 디 토마소 디 나르두치오의 소유로, 그는 부친 로도비코의 여동생인 셀바지아와 결혼했다. 로도비코는 자신의 모친 알레산드라 브루나치(1410-94), 형인 프란체스코(1434년 10월 14일생), 그리고 그 두 번째 부인인 카산드라 바르톨리(1455년생)와 한 집에서 생활했다.
1477 5월 26일, 로도비코의 셋째 아들 부오나로티가 태어나다.
1479년 3월 11일, 로도비코의 넷째 아들 조반시모네가 태어나다.
1481 1월 22일, 로도비코의 다섯째 아들 지스몬도가 태어나다.
12월 초, 모친 사망
12월 6일, 모친의 장례식
같은 해에 여섯째 아들인 마테오가 태어나다. 미켈란젤로의 모친은 아마 이 아이의 출산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 그는 로도비코의 두번째 부인의 아들로서 1486년이나 되어서 태어났을 것이다.
1482(?) 미켈란젤로가 프란체스코 다 우르비노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다.
1485 루크레치아 디 안토니오 도 산드로 우발디니 다 갈리아노와 로도비코의 결혼
1488 4월 1일, 부친가 도메니코, 다비데 기를란다이오 형제 사이에 미에 대한 3년간의 수업계약 체결.
1489 기를란다이오 도제공방을 나와 베르톨도 디 조반니가 교장으로 있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미술학교에 입학하다.
1490(?) <사티로스의 두상>, 대리석, 소재 미상
1490-1492 로렌초 데 메디치 가족과 함께 시장관저에서 생활하다.
1490-1492(?) <계단 앞의 마돈나>, 저부조, 대리석, 피렌체, 카사 부오나로티 소장
1491(?)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의 시체실에서 프라 니콜라이오 디 조반니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아 해부학 공부를 시작하다.] ...
그리고 그 연보는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
[1564 2월 18일, 오후 5시경 미켈란젤로가 사망하다.]
II.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화실
1. 소년은 이층 침실 거울 앞에 앉아서, 광대뼈가 튀어나온 야윈 뺨, 넓고 펀펀한 이마, 지나치게 뒤쪽에 붙어 있는 귀, 앞으로 둥글게 컬된 숱많고 짙은 머리, 양쪽으로 넓게 벌어진 두툼한 두 눈을 그리고 있었다. “정말 못생겼구나.” 진지하게 자기 얼굴을 그리던 열세 살짜리 소년은 이렇게 생각했다. “제멋대로 생긴 얼굴에, 이마는 갂아지른 것 같아.”
그는 뒤에서 자고 있는 네 명의 형제를 깨울세라 강단진 몸을 살며시 움직여서 친구 그라나치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지 델랑구일라라 거리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어서 크레용을 재빨리 움직여 눈은 더 크게, 이마는 둥글게, 뺨은 넓게, 입술은 두툼하게, 턱도 더 크게 하며 자기 모습을 다시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조금 나아 보이네. 대성당 전면을 설계하듯이 사람 얼굴도 태어나기 전에 재구성할 수 없는 게 안타깝군.”
싸늘한 아침 공기 속에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새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도화지를 베개 밑에 감춰두고 조용히 원형 돌계단을 내려가서 거리로 나갔다.
프란체스코 그라나치는 그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머리는 건초 빛깔에 푸른 눈이 또렷한 열아홉 살짜리 소년이었다. 지난 일 년간 그라나치는 데이 벤타코르디 거리 건너에 있는 자기 집에서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재료와 장소를 제공했고, 기를란다요 화실의 그림들을 몰래 가져와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라나치는 부잣집 아들이면서도, 열살에 필리피노 리피에게 사사받았고, 열세 살에는 마사초의 미완성 작품인 ‘황제의 조카를 일으키는 성 베드로’에서 부활한 소년의 모델이 되었고, 지금은 기를란다요에게 사사받고 있었다. 그라나치는 자신의 그림은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눈은 날카로웠다.
“이번에는 정말 같이 갈 거지?” 그라나치가 흥분해서 물었다.
“그게 바로 내 생일선물인 걸.”
“좋아.” 그라나치는 자기보다 어린 소년의 팔을 잡고 옛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 터에 세워진 높은 감옥 담장을 따라서 굽은 데이 벤타고르디 거리를 걸어갔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선생님에 대해 내가 한 말 명심해. 나는 그분에게 5년째 배우고 있어서 잘 알아. 겸손해야 돼. 제자들이 감사하는 걸 좋아하시거든.”
그들은 그 도시 제2성벽의 경계인 기벨리나 문 바로 위쪽에 있는 기벨리나 거리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왼쪽에 있는 바르젤로의 웅장한 바위더미와 화려한 정부관사 안마등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돌아 프로콘술 거리와 파치 궁전 쪽으로 향했다. 어린 소년은 벽의 불규칙하게 대충 깎인 돌들을 사랑스럽게 만졌다,
“빨리 가자.” 그라니치가 다그쳤다. “기를란다요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시기 전에 만나는 게 제일 좋단 말이야.”
그들은 서로 맞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좁은 길을 지나서 석조 궁전들과 튀어나온 탑으로 향하는 돌계단들이 외부로 나 있는 옛 쇠의 거리로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 좁은 데이 테달디니 거리를 통해서 붉은 기와의 대성당의 일부가 보이는 델 코르소 거리를 지났다. 왼쪽으로 희미하게 해가 솟아오는 피렌체의 푸른 하늘을 꿰뚫고 있는 시청 궁전의 아치와 창문과 지붕의 석탑들이 보였다, 기를란다요 화실에 가려면 옛 시장 광장을 지나가야 했다. 푸줏간 진열대에 등뼈를 갈라 펼쳐놓은 갓잡은 소들이 걸려 있었다. 화가의 거리에서 데이 타볼리나 거리의 구석에 있는 기를란다요 화실까지는 멀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오르산미켈레(곡물 거래소/역주)의 높은 니치(조각품을 설치하도록 벽을 움푹 파낸 공간/역주)에 서 있는 도나텔로의 대리석 조각 ‘성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조각은 가장 위대한 예술이야!” 그가 감정이 어린 목소리로 감탄했다.
그라나치는 2년간이나 사귀어온 친구가 내심 조각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 말엔 찬성 못 하겠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그만 쳐다봐. 할 일부터 해야지.”
소년은 숨을 크게 쉬었다. 그들은 기를란다요 화실로 함께 들어갔다.
2. 천장이 높은 큰 화실에는 물감과 목탄의 자극적인 냄새가 가득했다. 가운데에는 말 조각상이 놓인 거친 널빤지 탁자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예닐곱 명의 학생들이 졸린 눈으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구석에서 절구 염료를 갈고 있고, 그 옆벽에는 오그니산티 교회의 ‘최후의 만찬’이나 로마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헌정된 ‘첫 제자의 소환’ 같이 이미 완성된 프레스코들의 유채색 밑그림들이 여러 줄로 쌓여 있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하여 미켈란젤로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려나갑니다. 그야말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듯이요.
III.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피렌체지도를 놓고 위에 나온 거리들을 찾아서 같이 걸어가면서 읽었습니다. 진짜로 미켈란젤로가 어느 날 누구하고 무슨 큰 거리를 걸었는지 작은 골목을 걸었는지 알게 뭡니까. 그래도 지도를 찾으면서 상상하는 것이 매우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도시의 미켈란젤로를 읽을 때도 그랬어요.
나는 방 안에 앉아서 지도만 가지고 그렇게 했는데요. 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었던 나의 한 친구는 피렌체에 갈 기회가 있어서 그곳에 갔을 때 이 소설에 나온 몇 장면을 골라서 그대로 가 보았답니다. 돌층계까지 감상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나서 여행소감은요, “너무 좋았어!”였습니다.
여러분도 지금은 여기에 있으니까 방 안에서 지도가지고 해보구요, 또 피렌체에 갈 일 있으면 내 친구처럼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에요.
지금, “내가 언제 피렌체엘 가겠어?”라고 생각하나요? 꼭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지도가 어디 있냐고 나에게 묻지는 않겠지요? 인터넷에 들어가면 많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이트에도 물론 있을 것이구요. 나는 아날로그라서 종이로 된 커다란 지도를 앞에 펴 놓고 거리 찾으면서 읽었습니다.
IV.
이 소설은 상, 중, 하, 3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좀 길지요. 그래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읽었습니다.
그냥 소설로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읽는 재미가 대단했구요. 사실 나는 이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합니다.
게다가 덤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 역사, 생활 등등에 대하여 상식이 풍부해졌(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의 인간상, 그것이 어떻게 예술로 표출되는가 하는 것을 그 어떤 이론적인 책에서보다도 더 많이 생생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책 전체가 그렇지만 예를 하나만 들어 볼까요. 중권에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구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기술적으로는 흰 대리석으로 너무나 완벽한 균형과 힘으로 인간의 신체를 만들었던 그리스 사람들을 결코 능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동상들에게는 마음이나 영혼이 없었다. 그의 다비드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쟁취하고자 했던 또한 플라톤 아카데미가 인간의 올바른 유산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의 화신이 되어야 했다. 내세에 구제받기만을 바라는 죄 많은 작은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 힘, 용기, 지혜, 신념, 능력을 갖추고, 세상을 인간의 창조적 지성과 열매로 채워놓을 두뇌와 의지와 내재력을 가진 영광스런 존재여야 했다. 그의 다비드는 아폴로보다도, 헤라클레스보다도, 아담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야 했고, 논리적이고 인간적인 세상에서 활동하는, 가장 현실적인 남성이어야 했다.
이런 신념을 어떻게 그릴까?] (500쪽 이하)
그 다음에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적으로 생각하고 구상하고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지금 보니까 이 책의 원제가 The Agony and the Ecstasy네요.
V.
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좀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읽은 책들을 두서없이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 책은 르네상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책들 중의 하나입니다. 대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 하인리히 코흐: 미켈란젤로.
- 로저 마스터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
- 크리스토퍼 히버트: 메디치가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
- 시오노 나나미: 신의 대리인
-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의 여인들
- 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다 재미 있었지만, 이 책들 중에서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었고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 순전히 내 취향에 의한 것이지만요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입니다.
VI.
여러분은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나는 다행히 지난 며칠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일 잘 하고 있습니다.
작심 3일이니까 오늘 다시 작심해야 하겠지만서두요.
방학 동안만이라도 1주일에 글 하나씩은 올리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손님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좋은 시간들 되세요.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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