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13. 사빈 멜쉬오르 보네: 거울의 역사

biumbium 2006. 7. 8. 15:28

 

사빈 멜쉬오르 보네: 거울의 역사. 윤진 옮김, 에코리브르, 2001.


차례


장 들뤼모의 서문

서문


1부 거울, 그리고 거울의 전파

1장 베네치아의 비밀

1. 금속 거울과 유기 거울

2. 거울, 값비싼 사치품

2장 왕립 거울제조소

1. 산업 스파이 사건

2. 생고뱅으로

3. 구체제하의 대기업

3장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1. 교역의 확장

2. 파리의 유행

3. 지방으로의 전파


2부 닮음의 마법

1장 신의 형상을 따라

1. 고대와 거울의 상(像)

2. 중세의 영성(靈性)에서의 거울

3. 위마니스트: 신의 자화상

2장 미메티즘의 승리

1. 거울과 예절

2. 집단적 나르시시즘

3장 자기를 보기, 그리하여 자기를 알기

1. 르네상스와 자기를 향한 시선

2. 17세기의 자기 반성

3. 거울의 연출


3부 불안스런 이질감

1장 악마의 표정

1. 사탄의 거울

2. 악마의 공모

3. 금지된 시선: 17세기의 죄악

2장 비스듬한 거울과 반사적 계략

1. 거울과 이타성

2. 중개자로서의 거울

3. 괴물들과의 유희

3장 거울의 파편

1. 반사상과 정체성

2. 분신의 경쟁

3. 거울 너머로 가기


결론


I.

이 책에 대해서는 서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하는 장 들뤼모의 서문에 나온 글입니다.


[거울을 주제로 역사적 시론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놀라운 생각이다. 어째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옛날에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고, 이제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 된 거울은 우리의 문명사에서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여정으로 독자들을 이끌기 위해, 우선 초기의 거울, 금속의 사용,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유리 거울의 등장, 주석 대는 작업의 난관들, 그리고 거울을 만드는 기술에서 부는 기법에서 흘리는 기법으로의 변화를 소개하며, 또한 거울 생산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한 베네치아의 무라노, 그리고 프랑스의 생고뱅 제조소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16세기까지도 여전히 강철 거울과 유리 거울이 함께 사용되다가, 이후 17세기에 이르러 유리 거울이 승리를 거둔다. 특히 베르사유가 그 주무대였는데, 베르사유의 창유리 거울 360개는 마치 한 장의 큰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17세기 말이 되면 파리 지역 세 가구 중 두 가구가 거울을 보유하게 된다. 이후 18세기에 거울은 각 가정의 실내장식을 점령하였고, 점차 타피스리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후 바닥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커다란 거울을 기울여 놓은 체경(體鏡)이 등장하여 환호를 받게 되고, 19세기에는 거울 달린 옷장이 큰 성공을 거둔다. 이제 오늘날 거울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서, 그 존재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는 1부에서 이렇게 거울 생산을 둘러싼 문제들, 특히 그 기술이나 주요 시기를 중심으로 분명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나머지 2,3부에서는 영역을 바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영역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 존재와 거울의 갈등 관계를 탐구하고, 또한 오랜 세월을 거쳐 선악의 문제, 신과 악마의 문제, 남성과 여성의 문제, 자아와 그 반사상의 문제, 그리고 자화상과 고백의 문제 등에서 거울이 차지한 다양한 관계들, 즉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며 도덕적인 관계를 탐구한다. 이후 거리낌 없이 수많은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탐구는 독자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인 정경을 제공한다. 때로 독자가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이 있을 정도이다.

이 책에 담긴 풍부한 내용을 거울과 관련된 두 가지 범주를 사용하여 - 하나는 긍정적인 범주이고 하나는 부정적인 범주이다 - 요약해보려고 한다. 사실 거울 자체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거울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은 거울에 비친 흠 없는 신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화가들은 거울을 든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을 즐겨 그렸으며, 중세에 신은 곧 완전한 거울로 여겨졌다. ‘오직 신만이 빛나는 거울’인 것이다. 사실 플라톤은 이미 인간의 영혼은 곧 신성(神性)의 반사상이라고 단언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보다 비극적으로 성경이라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사람은 빛나는 신의 영광과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통스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뒤러에게 인간은 곧 신의 자화상이었다. 바로 신의 얼굴을 통해 인간 얼굴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중세의 ‘스페쿨룸’(예를 들어 뱅상 드 보베의 스페쿨룸)은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처했으며, 중세 문학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거울, 특히 ‘위인(偉人)들의 거울’은 교화(敎化) 문학 장르를 이루면서 독자들이 본받아야 할 행동을 제시하는 이상적인 전범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반대로 거울의 반사상이 야기하는 환상은 경계의 대상이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힌 것이다. 거울은 덫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17세기와 18세기에 그러했듯이, 와관(外觀, paraître)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 거울은 ‘열성적인 궁정인, 사랑이 빠진 남자들의 연적(戀敵)이며, 멋부리는 여자들의 조언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메아리로 이중화되어야만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반사상의 사회’에서 거울은 필수불가결한 물품이 된다. 그렇다면 거울은 그대로 따라하는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가? 이것은 모랄리스트들이 소리높여 거울을 비난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모랄리스트들에 따르면 거울은 ‘광기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사치에 불을 지피고, 악령 혹은 죽음을 감추고 있고 또 드러낸다. 이렇게 해서 거울은 ‘허영(vanité)’, 그리고 인간의 시신(屍身)과 연결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거울은 계략을 쓴다는 것이다. 거울 속에 ‘같은 모습의 반사상이 만들어질 때 바로 그 자리에 다름(dissemblance)이 스며드는 것이다.’ 거울 안의 오른손은 거울 앞에 선 자의 왼손이 아닌가. 나아가 거울이 가진 눈속임 능력은 여러 광학적 기술을 통해 더욱 개발된다. 의도적으로 대상을 변형시키고, 착란을 유도하며, 심지어 존재의 해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거울은 모호한 물건이다. 사실 ‘여인은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에 이를 수’ 있으며, ‘거울은 여성성(féminité)의 특별한, 하지만 무너지기 쉬운 자리’이다. 하지만 세르반테스가 경고하듯이, “여인은 반짝이는 크리스탈 거울이라서 숨길만 닿아도 흐려지고 빛이 바랜다.” 또한 시몬 베이유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은 거울을 보고는 자신이 바로 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못생긴 여인은 그게 다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7쪽 이하)


II.

나는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마치 추리소설처럼이요.

역사(문화사) 얘기, 문학얘기, 건축얘기 등이 거울을 매개로 하여 소개됩니다.


내가 교육사회학 시간에 일부를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학기용 카페를 운영했는데요. 그때 한 학우가 이 책으로 레포트를 쓰면서 카페에 질문을 올렸고 내가 답했던 것을 여기에 다시 옮겨봅니다.


***

한 학우가 이 책과 사회화를 어떻게 연결지으면 좋을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는 다른 학우들에게도 참고가 될까 해서, 그리고 레포트와 관계없이 이 기회에 이 책에 흥미를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답을 여기에도 올립니다.


다음에 내가 발췌한 문장들을 읽어보면 거울과 “사회화”의 관계가 좀 뚜렷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자아와 그 반사상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 [겨우 접시만한 작은 거울도 사람들이 탐내는 귀한 물건이었다. 거울은 귀족들의 사치의 상징이며 자기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자연 상태와 문화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거울은 사람들의 눈을 일깨우면서 문명화 훈련을 위한 중계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거울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자기 몸을 꾸미는 취향이 생겨났고, 사회 계층을 말해주는 지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1)


- [거울, 사진,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전신(全身)을 보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오늘날의 우리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리고 벽난로 위를 큰 거울로 장식하게 된 것이 그들의 공간 인지에 얼마나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과 몸 - 거울이 없으면 오직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2)


- [[...] 두번째 난점은 ‘거울’이라는 말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거울의 의미론적 영역은 신화에서 자아(自我)의 글쓰기까지, 상징성에서 있는 그대로의 뜻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양극단을 포괄하며, 때로 의미가 겹쳐지기도 한다. 우선 거울은 신비주의의 어휘에 속하며,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지표를 설정하고 존재와 외관의 변증법을 전개시키는(지속적인) 도덕적 담론을 낳는다. 그 다음에야, 산발적으로, 거울은 자전적 증언들 속에 자아 정체성의 구성체로 등장한다.](13)


- [지난 세기부터 발롱(Henri Wallon: 1879-1962. 프랑스의 아동심리학자.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아동의 심리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쉴더, 레르미트(Jean Lhermitte: 1877-1959. 프랑스의 소아신경학의 전문가, <우리 육체의 상(Image de notre corps)>이 대표작이다-역주) 같은 위대한 심리학자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다는 사실이 인성의 형성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들에 따르면 주체의 형성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외부 세계와 타인과의 분화(分化)에 대한 의식을 포함한다. 주체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외적인 지각을 내적인 감각과 연결시키는 능력을 가질 때, 육체에 대해 의식에서 자의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공간 속에서의 자기 자신의 육체에 대해 가진 상(像), 즉 ‘신체상(schéma corporel)’ - 이것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인지하면서 완성된다 -이라는 개념은 정신분석에 수용된다. 정신분석은 그것을 신체상의 ‘리비도 구조’라고 표현하며, 욕망이 흩어진 감각의 소여들에 형태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정신분석은 특히 유명한 <나(Je)의 기능을 형성하는 거울의 단계>에 주목했다. 이것은 라캉이 1959년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으로, 거울의 단계는 상징적 활동 단계의 한 부분이다. 즉 거울 앞에 선 아이는 단편적으로 조각난 육체의 상을 벗어나 단일한 상을 갖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상과 그 실제 모델인 자신의 차이를 이해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 앞에서 새로운 투사 기능을 얻게 된다. 그것은 곧 정신적 공간의 확대이다. 물론 거울에 비친 상이 신체의 단일성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거울을 통한 단일성은 점차적으로 형성되며, 또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어느 순간에도 완전한 단일성을 획득하는 것을 불가능하기에, 거울은 자기확인과 자기표상의 보조자이며, 깊은 내면의 심리적 불안을 드러내기도 한다.(14쪽 이하)


- [거울을 보고 그것이 자기 모습임을 아는 것은 주체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안과 밖을 구별하는 정신 작용을 거쳐야 한다. 거울 속의 다른 얼굴이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알고, 그 다른 모습의 또다른 모습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직접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 세계를 보았을 때 보여지는 상호적 관계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동문들이 거울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관찰한 실험을 통해 거울 앞에서의 인간 행동 - 주체가 상징계로 들어섬을 의미한다-의 특성이 밝혀졌다.] (15쪽 이하)


좀 뒤로 넘어가 볼까요!


- [내적 성찰을 일구는 도구로 쓰이기 이전에 거울은 먼저 외관을 가꾸는 데 사용되었다. 즉 사회적 적응과 조화의 도구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쳐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이 사람들을 본다. 거울은 스스로 법칙을 공포하고 규범적 도구가 되며, 그에 따라 사교계의 규칙에 적합하고 부응하는지를 판단한다. 자의식은 우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 즉 그 표상과 가시성과 일치한다. 나는 보여졌다. 고로 존재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외관(外觀), 역할, 인정(認定)을 거치며, 그렇게 해서 주체의 위상에 이르는 길을 조건짓는다.] (163)


- [교양인의 이상은 모방과 닮음에 근거한다. 자존심과 개인적인 관심대신 품위단정한 몰개성적 얼굴을 통해 인간들 사이에 완전한 일치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샹들리에 불빛과 거울의 반사 아래서 “어두움이 숨기가 무척 어려운” 베르사유의 거울의 방은 모든 이의 시선에 노출된, 그러면서 모든 것을 보는 사회, 명료성과 친화성이라는 명목으로 자기에 대한 모든 시선을 가로채고 위장하고 속이는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63)


정신적 거울에서 세속적 거울로 (164)


- [거울은 예절학을 가르친다. 귀족들의 재산 목록에서 거울은 ‘궁중 예절’에 근거한, 즉 외관에 대한 관심과 예절의 규칙에 근거한 사회적 확인의 체계 안에 자리잡는다.](164)


- [... 이 일화에서는 인간의 눈이 가진 능력에 관해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위한 자리는 없다. 거울은 허영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피하지 못하는 자아, 그리고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고 행동 속에서 완성되는 사회적 자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담당한다.](170)


- [거울은 본질적으로 관계에 기반을 둔 존재 방식과 미미하나마 자기 자신과의 사이에 이루어지던 대화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했으며, 사회적 통제가 느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몽상적 성찰에 빠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벽이 있어도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감시를 받고 있는 시선, 다른 시선이 보고 있는 시선인 것이다.](172)


- [자아를 정확하게 해석한다는 것은 거울을 자주 열심히 들여다보아야 함을 상정한다.](175)


-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 남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175)


-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곧 타인의 시선을 확인하는 것이다. 폐쇄된 작은 방의 은밀함 안에서 교양인은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수정하여,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또 타인의 인정을 받을 만한 모습을 가꾼다.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즐거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177)


- [평판이란 일종의 메아리, 거울의 반사상 같은 것이다. 메아리나 반사상을 보내는 타인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으로 그것을 확인한다.](177)


- [인간 사이의 교류는 동일한 지표를 사용하느냐에 근거하며, 즉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거울을 타인에게 내미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다.](178)


III.

비움과 채움이 함께 있는, 그리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방학되기 바랍니다.


김명신